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3대 대통령 선거 (문단 편집) == 영향 == 비록 대통령 선거는 비교적 싱겁게 끝났지만, [[대한민국 부통령|부통령]] [[선거]]에서는[* 당시 [[대한민국 헌법]]에서는 부통령을 러닝메이트가 아니라 따로 선거를 해서 뽑도록 했다.] [[민주당(1955년)|민주당]] 후보 '''[[장면]]'''이 '''[[자유당]]''' 후보 '''[[이기붕]]'''을 꺾으면서 당선되었다. 1956년 당시 이승만이 한국나이로 81세의 고령이었기 때문에 임기 중 사망할 확률이 높아 보였으며, 만약 이승만이 죽을 경우 당시 현행법상 부통령인 '''장면'''이 대통령직을 승계하기 때문에 민주당에게 정권이 넘어갈 판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 자유당에서는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부통령 자리를 공석으로 만들려고 했다.]] 결국 이승만이 85세까지 살아남아서 민주당 부통령에게 대권이 넘어가는 일은 결과적으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승만이 나이가 많아 부통령 자리가 대통령만큼 중요하다는 점은 여전했고 1960년에 치러진 다음 선거에서는 아예 '''[[3.15 부정선거|부통령도 어거지로 당선시키려고 사상 최악의 부정선거를 강행]], 결국 [[4.19 혁명|시민혁명]]으로 권좌에서 쫓겨났다.''' 이후 이승만은 1965년까지 살았고 1964년까진 그럭저럭 대외활동을 할 수 있을 만큼 건강했다. 만약 1960년에 부정선거를 하지 않았어도 부통령에 대권이 넘어갈 일은 없었던 것이다. 다만 이건 4.19혁명 때문에 정치권에서 받아야 하는 극강의 스트레스가 없어진 상황에서 일어난 결과이기에 만약에 4.19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을 경우에도 이승만이 대통령 임기를 무사히 마쳤을련지는 의구심이 든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